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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인물

조선시대 최고 인기아이템 [벼루]와 벼루장인 [정철조]

벼루장인 석치 [정철조]와 벼루 이야기

 

요즈음 sns의 발달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뽐내며, 부와 명예를 얻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우리는 이런 인플루언서들의 슈퍼팬을 자처하며, 그들의 성장과 함께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인플루언서들 못지않게, 자신의 능력을 뽐낸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석치' 정철조.

이번 시간에는 벼루 하나로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된 정철조 님에 관해 공부해보겠습니다.

 

 

 

 

 

드라마 징비록

[조선시대 벼루는 생활필수품]

조선시대 벼루는 생활필수품처럼 없어서는 안 될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정철조 님에 관해 알아보기 전에, 벼루가 왜?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졌는지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기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등의 공식적인 기록과 이순신의 [난중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과 같은 유명한 일기뿐 아니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꽤나 다양한 사람들의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조선시대에는 이런 일기가 발달했을까요?

 

당시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이웃 간에 서로 주고받으며, 해결하는 선물 경제의 시대였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어떤 물건을 받았다면, 그와 비슷한 값어치의 물건으로 보답을 해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큰 결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가계부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벼루 특별전에 전시된 다양한 벼루 <경주박물관 >

 

 

 

그래서 조선시대의 일기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의 날씨와 기억에 남는 꿈, 질병, 정국동향, 집안의 대소사, 손님 접대,잠자리 등 하루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또한 먼길을 떠나는 선비들이 꼭 챙기는 것이 붓과 종이 그리고 벼루였습니다.

길을 가면서 무언가 시상이 떠오르거나 기억해야 할 것이 생기면, 즉시 벼루를 꺼내 먹을 갈거나 먹물을 붓고

메모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조선시대에는 벼루가 생활필수품이면서 인기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었죠.

벼루를 너무 좋아해서 1천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벼루의 인기를 실감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흥부전

[돌에 미친 장인 '석치' 정철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벼루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벼루가 생산되었으며

그중 명품으로 여겨지는 작품들도 나오게 됩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바로 정철조 님의 벼루였습니다. 

 

정철조 님은 그야말로 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석치(돌에 미친 바로)라는 호를 얻게 되었을까요.

정철조님은 문과에 급제한 관리 출신으로 과학, 기술, 천문, 수학, 예술에 능했으며, 천문 기계와 농기구, 지도

까지 직접 만들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벼루를 만드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뽐내었는데요.

 

평소에도 허리춤에 패도를 차고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돌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깎아서

벼루를 만들어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진정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또한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듯이, 그는 돌의 종류도 가리지 않았고, 그 돌이 가지고 있는 모양과 느낌을

최대한 간직하면서 예술의 경지로 벼루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그의 작업 속도와 예술혼 때문에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정철조의 벼루를 하나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네요.

 

 

 

 

 

그의 벼루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합니다. 

 

"그의 벼루는 지금까지 본 천여 개의 벼루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강세황-

 

"본래 생김새에 따라 약간의 요철을 그대로 살려 두었지만, 갈고 깎은 정밀함 만큼은

보통 사람이 절대로 미칠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다."

-심노승-

 

 

이런 그의 벼루를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정철조 님이 깎은 수많은 벼루 중 실물로

전해지는 것은 없다고 하네요.

다만, 박영철이 소장했던 것을 이한복이 그린, [정철조의 벼루 그림]이 전해져 내려오기는 합니다.

 

정철조의 벼루 그림

 

 

 

 

 

 

정조의 각인이 새겨진 율곡이이의 벼루 

[ 벼루에 새긴 각인으로  자신의 개성을 뽐내다.]

아이패드 혹은 몰스킨을 구입하게 되면,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이 남기고 싶은 문구를 적을수 있는 각인 시스템이

있습니다. 또한 노트북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붙이면서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죠.

이런 나만의 개성을 뽐내려는 욕구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새기면서 자신만의 커스텀 벼루를 만들곤 했죠.

연명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글을 지었는데, 이런 작품들은 대체로 바닥에 새겨져 자신의 좌우명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정조 율곡연명>/<노트북 커스텀>

 

정조 역시 벼루에 각인을 남겼는데, 자신의 벼루가 아닌 율곡이 남긴 벼루에 남겼습니다. 

정조는 율곡이 사용하던 벼루가 그의 집안에 전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벼루를 너무도 보고 싶어 합니다.

평소 율곡을 존경했기에, 꼭 한번 실물로 보고 싶었던 거죠.

드디어 그 소원은 이루어지게 되었고, 율곡의 벼루를 실물로 보게 됩니다.

이때 정조는 글 한편을 지어 직접 글씨를 쓴 다음,벼루의 밑면에 새겨 율곡의 집안에 돌려줍니다.

 

 

무지를 적신 듯

공석을 닮은 듯

그 쓰임은 넓어서

용이 골짜기로 돌아가는 듯

구름이 먹을 뿌리니

글이 여기에 있구나

<정조 율곡 연명>

 

 

이 벼루는 강릉 오죽헌이라는 곳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실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오죽헌 보물 제165호 

 

강원 강릉시 율곡로 3139번 길 24 오죽헌

매일 09:00~18:00(연중무휴)

관람료 어른 3,000원, 어린이:1,000원 

https://www.gn.go.kr/museum/index.do

 

 

 

 

 

이번 시간에는 벼루장인 정철조 님과 당대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벼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좀 더 깊이있게 벼루에관한 공부를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종류의 벼루와 영조의 (어필벼루)벼루에 관해 나와 있네요.

 

 

문화유산채널/벼루에 관한 이야기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혹시 역사이야기 중 평소 궁금하셨던 내용,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가져와 보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선물의 문화사,벽광나치오>

 

 

 

또 다른 인플루언서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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