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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조선

폭군 연산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해 만든 관청[회동습역소]

 

조선시대를 통틀어 폭군의 이미지가 가장 강한 왕은 아마도 연산군 일 것입니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본인은 궁궐 안에서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도 연산군의 향락 문화에서 생겨난 말이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하시겠죠?

하지만 연산군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린아이까지 이용했으니까요. 이번시간에는 연산군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만든 관청, [회동습역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각 고을의 아이를 불러모은 연산군 

1506년 <연산군 일기>에는 매우 특이한 기록이 보입니다. 연산군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어리고 총명한 아이들을 뽑아 데려오라." 이 말 한마디에 각지에서 총명하다고 소문난 아이들은 모두 궁궐로 모이게 됩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어린아이들을 뽑아서 데려오라고 한 것일까요? 과연 그 아이들은 궁궐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된 것일까요? 

 

 

 

연산군의 욕망을 위한 관청 [회동습역소]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던 연산군은 어느 날 기이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바로 곤충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연산군은 특이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곤충을 잡으려면, 다 큰 성인보다는 아이들이 훨씬 잘 잡지 않을까?" 

연산군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명령을 내립니다. 곤충 채집을 위해 각 고을에 총명한 아이들을 뽑아 궁궐로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본격적이었던 게, 그냥 아이들을 시켜 곤충을 채집시킨 게 아니고, 실제로 아이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아예 전담 관청을 세워버린 것입니다. 이 관청의 이름이 바로 [회동습역소]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소집해서 곤충을 잡게 시키고, 그걸 위한 관청을 만든 것이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회동습역소 

회동습역소가 정확히 언제 폐쇄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연산군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폐위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산군은 결국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그해 늦가을쯤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이번시간에는 연산군의 괴상한 욕망에서 시작된 관청 [회동습역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때 끌려온 아이들은 끌려오기 전에는 그의 무시무시한 소문에 두려워하다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라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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