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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조선

악플달고 댓글로 싸운 조선시대 사람들 (세책점 이야기)

조선시대 세책점의 탄생과 소멸

 

 

SNS가 발달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악플인 것 같습니다. 악플때문에 자살하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기사 하나에도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댓글로 싸우는 그런 문제들 말이죠. 그런데 이런 싸움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엥? 조선시대에 무슨 댓글로 싸워?"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런 싸움이 원흉이 되었던 조선시대 세책점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판 콘텐츠 플랫폼

세책점은 쉽게 말해 조선시대 도서 대여점 이었습니다. 90년대 인기가 많았던 책 대여점, 혹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웹소설, 웹툰(쿠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종이가 귀하다 보니, 책을 직접 사기에는 부담이 되었기에, 이런 니즈를 통해 만들어진 것 이 바로 세책점이었습니다. 책을 빌릴 때는 비용과 함께 담보를 맡겼어야 했는데, 은비녀 같은 장신구부터, 담요, 옷,심지어 바늘 같은 생활용품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대여료는 권당 5전 정도로 실제 책을 구입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해서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세책점의 탄생

 

조선시대 세책점이 언제 생겨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8세기 인물인 체재공[1720~1799] , 이덕무[1741~1793] 가 세책본의 폐해를 이야기한 것으로 보면, 적어도 이 무렵을 전후로 세책점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한 전기는 눈뜨고 볼 수 없는데, 집안일을 팽개쳐두고, 여인의 일을 게을리 하여 버려두고, 그걸 돈을 주고 빌려보기에 이르렀으며, 깊이 빠져서 집안 재산이 기운 자도 있다 [이덕무 / 사소절]

 

세책점은 책쾌라는 사람들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책쾌는 가방에 책을 넣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고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고정된 점포를 차려서 책을 대여해 주기 시작했는데, 이 대여점이 인기가 많아지게 되었고 점점 분업화 체계화 되면서 세책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책방 주인의 큐레이션이 있었던 세책점

 

세책점 책은 대부분 필사작업을 해서 만들었는데, 기존의 책과는 다른 차별점을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책이 튼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삼베로 표지 작업을 하였고, 두꺼운 종이에 들기름을 칠해서 종이가 훼손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또한 책을 넘길 때 가장 많이 닿는 부분인 페이지 모서리 부분에는 1~3자 정도의 공백을 두어 글자가 지워지는 것을 미리 막기도 했습니다. 

 

 

 

각 책의 가장 윗부분 중간에는 크게 페이지수를 체크해놓았고, 마지막 장에는 필사를 했던 년도, 지명을 기재하였습니다. 요즘 드라마들처럼 다음화를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다음 권에 계속" 같은 말을 적기도 했고, 다음 권의 첫 페이지에는 전편을 요약해서 알려주거나, 전권 마지막 부분을 반복해서 다시 몰입하기 쉽게 만들어줬습니다. 

 

또한 세책점 주인만의 큐레이션 이 존재했는데, 구운몽의 경우는 책 앞에 간략한 소개를 적어 놓기도 했고, 홍길동전의 경우는 흥미 위주로 개작을 해서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 대여률을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체계적인 세책점의 대출시스템 

 

많은 사람들이 대여를 해서 보는 책이었기에, 대여 기록을 잘 정리해야 했습니다. 당시 대출기록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대출시에는 작품명을 크게 쓰고, 빌린 사람 이름, 사는 곳, 몇 권 빌렸는지, 담보는 무엇을 맡겼는지, 언제 빌렸는지 순으로 적었는데, 지금의 도서관 대출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납을 하게 되면, 권수 옆에 줄을 그었고, 다시 같은 책을 대여하면 옆에 새로 적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조선시대 세책점에는 다양한 책들이 존재했는데, 주로 한국의 영웅 이야기(창작 혹은 실존), 중국의 삼국지 같은 책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중 스테디셀러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은 춘향전, 흥부전, 유충렬전, 장화홍련전 이 있었고, 세책점 주인들이 좋아했고, 많이 읽혔던 책은 장편 소설이 있었습니다. 장편 소설의 경우 책의 권수가 많다 보니, 그만큼 고정 독자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삼국지는 총 69권 정도 윤하정삼문취록이라는 책은 무려 189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의 향목동의 세책점에 있던 책은 120종 , 3221 권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세책점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자영업자 세책점 주인의 고충

 

자영업자 였던 세책점 주인은 다양한 진상 고객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책을 대여해서 가져다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해지는데, 대형 세책점의 경우 1년에 100권씩 잃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책에 낙서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책에 낙서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세책점 책의 경우 이익을 위해 원래 한 권의 책을 3~4권으로 늘려서 필사를 진행했는데, 이것 때문에 불만인 사람들이 욕을 책에 적거나, 책 값이 비싸다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필사를 하다 보니 필사한 사람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낙서를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아무런 의미 없이 선정적인 낙서를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런 낙서에 화가난 세책점 주인들은 경고문을 적기도 하고, 낙서가 심한 페이지는 그냥 백지로 덧붙여 가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낙서들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되면, 대여가 안되니, 책을 새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세책점이 하락하던 시점에는 세책점 운영만으로는 이익이 나지 않아 다른 일과 병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술을 팔면서 책방을 운영하거나, 잡화 판매를 하면서 운영을 하거나, 필사를 외주로 받아 세책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사라진 세책점

세책점은 1907년 신소설이 등장하면서, 더이상 고전 소설의 필사본에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거기다 한양에만 있었던 세책점의 특성 때문에 더 큰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구한말~ 일제강점기 서울의 인구가 줄어들며, 주요 독자층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명맥만 남아 있다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세책점은 완전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하네요.

 

 

이번 시간에는 조선시대 세책점의 흥망성쇄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