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권력의 끝판왕 별감
투잡,부업,재테크 등 다양한 돈벌이를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처럼, 조선시대에도 월급외 수익에 열을 올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식 월급보다 비공식적인 루트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더 윤택한 삶을 살았던 별감이 그 중 한명이었는데요. 이번시간에는 이 별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소년 근위대에서 시작된 별감

별감은 궁궐에서 근무하는 채아직으로 대개 900일 정도의 기간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채아직은 필요할 때만 소집되어 일하는 형태로 근무하는 오늘날의 프리랜서에 가까운 직업군 입니다. 별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377년 (공민왕 21) 고려의 공민왕이 설치한 자제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민왕은 미소년들을 선발해 분홍옷과 검은 겉옷을 입히고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귀한 신분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위상이 낮아졌고,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잡무(행정,실무,심부름 등)을 맡는 하급 실무직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다양한 종류의 별감

조선시대 별감은, 소속 관청과 담당 임무에 따라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점마별감
각도의 목장에서 기르는 말의 숫자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궁궐에서 일하는 별감(내사복식), 궁궐 밖에서 근무하는 별감(외사복시) 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직별감
다방별감,사준별감 이라고도 불리며, 채소,약초,꽃,술, 과일 등 궁궐 식재료 재배와 공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전별감
왕을 가까이서 모시며, 의전과 호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궁전,세자궁 등 왕실 가족을 모시는 별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만큼 최고의 권력과 수입을 얻은 별감이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궁궐 근무자들을 통칭해 내시별감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별감(대전별감)은 화려한 복식과 짭짤한 수익 덕분에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빈자리가 생기면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럼 별감의 다양한 수입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월급보다 뒷돈이 더 짭짤했던 별감

별감은 정식적인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인 수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1.궁문 통행세(궐내행하)
별감의 대표적인 수입원은 지방관으로 부터 걷어들이는 통행세였습니다.
지방 수령으로 부임한 관리는 임지로 가기 전 반드시 임금을 만나야 했는데, 이때 각 궁문과 관아를 통과할 때마다 별감에게 [궐내행하]라는 명목의 통행세를 내야 했습니다. 목민심서에 따르면 별감들은 적게는 50~60냥 에서 많게는 수백 냥에 이르는 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만약 돈을 충분히 내지 않으면, 궁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막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횡포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승정원일기]에는 1798년(정조22) 개성 최고 관리가 하직할 때 금품을 요구한 사례가 나와 있으면, 1801년 (순조1년) 에는 경기 도지사급 관리가 하직하자, 경기 감영까지 따라가 금품을 요구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왕실 특별 보너스(연수전과 고풍)
연수전은 왕실 행사 후 잔치를 열라고 지급하는 비용이었습니다. 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하던 별감의 특별 보너스 였던 셈이죠. 1866년 철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신 뒤 총 4,470냥을 특별 보너스로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풍은 활쏘기, 경가 등 특별한 날에 받게 되는 상금이었는데, 1876년 세자궁 탄신일에 308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출산 관련 축하금을 받기도 하였는데, 명성왕후가 출산을 할때마다, 별감이 속해 있던 액정서 인원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그 밖의 특별 혜택
1867년 별감 한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자 무명 2필을 주고, 나을때까지 말미를 주기도 했으며, 1871년에는 아직 장가가지 않은 별감 6인에게 각,100냥을 하사하여 장가 갈 밑천으로 삼게 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또한 능력 있는 별감의 가족을 하급 서기로 임명하는 등, 다양한 특별 가족 복지 혜택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별감의 악행들
[조선왕조실록]에 별감에 대한 기록은 궁녀 선발자이거나, 밤의 무법자, 술주정 등 유흥과 관련된 사건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궁녀를 뽑는 것은 별감의 일은 아니었지만, 별감이 마음대로 뽑아 들이면서 많은 폐단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별감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집안의 여인을 잡아가는 통에, 양인,서리,의관,역관으로서 딸을 둔 사람들은 여덟살에 시집을 보내기도 하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별감과 뒷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외에도 대전별감 네 사람이 민가에서 횡포를 부리기도 하였고, 만취한 별감이 포교에서 체포당하자 무리를 거느리고 포교의 집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까지 한 사건도 전해집니다.
조선의 패션리더 별감

별감은 하급 관리였지만, 복장은 상류층 못지 않게 화려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복식은 자신들의 부와 위신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개성있는 주황초립

왕의 행차 때 별감은 흑립 대신 주황색 초립을 착용했습니다. 주황 초립은 정수리에 살짝 얹는 형태로, 그 민트로 보이는 망건(머리망),관자(관자놀이 장식) 을 더욱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각양각색의 허리치장
별감의 허리 장식 역시 단조로운 흰 바지저고리 위에 고급 주머니와 매듭, 장신구를 더해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주머니는 고급 비단에 복숭아,석류,불수감 문양(장수와 자손 번창을 의미) 을 넣었고, 매듭은 나비매듭,도래매듭 등 궁중식 정교한 매듭으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장도(여성용 호신 무기) 지만 별감은 백옥,밀화 등 보석 장도를 달아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맵시 있는 홍의
별감은 예외적으로 다홍색 도포(직령)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 색은 행사의 성대함을 강조하고 화려함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군중 속에서 "왕의 시위자"로 눈에 띄게 하기 위한 복색으로 보입니다. 이런 별감은 색의 대비를 중시하였는데, 붉은 겉옷과 청색 속의 조합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치며
별감은 신분은 낮았지만, 왕의 직속 기관인 액정서 소속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궁궐을 누비며 부를 과시했고, 다양한 수입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린 조선의 대표적 N잡러 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권력 남용과 부패, 그리고 이를 묵인한 왕실의 구조적 문제도 존재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별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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