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종종 자신이 동경하는 스타와 닮고 싶어 성형을 했다는 사람들도 있죠.
이런 스타일에 대한 고민과 유행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이런 유행 때문에 목숨을 잃은 여인도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오늘은 조선시대 붙임머리의 일종인 가체와 그 무게 때문에 목뼈가 부러져 죽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는 크고 풍성한 머리가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면서, 가짜 머리인 가체를 넣어 땋는 머리가 유행을 하게 됩니다.
이 가체는 크고 풍성한것일 수록 좋은 것이라 생각되었기에 점점 그 크기와 무게가 커지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혼례중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여인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가체의 가격은 당시 한양 기와집 두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싼 것이었기에 요즘으로 따지면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할수 있었죠.
그렇기에 이런 가체의 폐단은 조선시대 내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곤 했었죠.
가체때문에 목숨을 잃은 여인과 가체 금지령
그러던 어느날 결국 가체 때문에 큰일이 터지고 맙니다.
조선시대 관리 이덕무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부인들은 비록 마지못해 세상 풍속을 따른다 하더라도 사치를 숭상해서는 안된다.
부귀한 집에서는 머리치장에 드는 돈이 무려 7~8만에 이르며, 그 무게마저도 사람이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그런데도 그 집 가장은 그것을 금하지 않으므로, 부녀자들은 더욱 사치스럽게 하여 행여 더 크게 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요즘 어느 한 부잣집 며느리가 가체를 얼마나 높고 무겁게 하였던지,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일어서다가 가체에 눌려서 목뼈가 부러졌다 한다.
사치가 능히 사람을 죽였으니, 아, 슬프도다!
-이덕무-
이럿듯 사치는 물론이고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문제까지 일어나게 되면서, 영조는 가체를 금지시키기로 합니다.
가체를 금지하면서, 쪽진 머리를 하되 족두리로 장식을 하라고 했지만, 실상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다시 가체를 사용하라 명하게 되는데요.
정조 때에도 마찬가지로 가체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가체신금사목]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혼인의 경우와 같이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머리 위로 얹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였으며, 비싼 보석류의 장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영조때와 마찬가지로 가체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금지령을 어긴 사람들에 대한 처벌도 별다르게 없었던 걸로 보아 법이 그렇게 큰 효력을 보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가체의 유행은 계속 지속되다가 순조 때에 이르러 그 인기가 시들해지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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