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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조선왕조실록

00_조선왕조 실록의 과학적인 보관방법 과 역사

조선왕조 실록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저번 시간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제작과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혹시 못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00_조선왕조 실록은 무엇인가_1

조선왕조실록 편찬과정 저번 시간에는 조선왕조 실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조선왕조 실록의 편찬과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편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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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조선왕조 실록의 과학적인 보관 방법과 우리 손에 전해지기까지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을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봐주세요.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의 과학적인 보관방법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는 오랫동안 책을 보존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바닥을 띄워 지어서 아래쪽으로는 바람이 통할 수 있게 하였고, 사고 바깥쪽으로는 이중으로 담을 빙 둘러

산불이나도 불이 건물 안쪽으로 번지지 않도록 한 것이었죠.

또한 권위를 상징하는 팔작지붕을 건물에 비해 훨씬 크게 지어, 눈비가 건물 안으로 들이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창문도 눈비를 막기 위해 처마 위쪽으로 바짝 높여 냈으며, 아래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 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위층 창문에는 나무로 된 반쪽짜리 창문을 덧대어 강한 햇볕과 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실록의 보관방법에서도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그림으로 잘 표현된 게 있어서 그림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실록의 보관방법

 

 

 

 

 

 

 

 

 

 

 

 

 

 

 

조선왕조 실록 포쇄 재현

 

지속적인 관리를 위한 포쇄 작업

실록의 경우 아무래도 종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습기가 차거나 좀벌레가 생기는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고, 화재의 위험도 있어 정기적으로 사관을 보내서 말리고 실록의 상태를 점검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포쇄라고 하였습니다.

포쇄는 대개 3년에 한 번 하였으며, 포쇄를 진행할 때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기록하여 남겼다고 합니다.

포쇄는 일정한 시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대개 따뜻한 봄인 3~4월이나, 여름 장마가 지나고 맑은 날이 많은 8~10월에

시행하였습니다.

날짜도 미리 길일을 택하였고, 포쇄하고 갈 때 관사감 관원을 대동하였다고 합니다. 

 

포쇄작업 일러스트

 

또한 실록을 꺼내어 보거나, 새로운 실록을 보관할 때도 반드시 상황을 점검하고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거나 꺼냈는지 보존 상황은 어떠한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를 형지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형지안에는 각 사고별로 보관된 서책의 종류와 수량, 파견된 사관의 명단 심지어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넣었던

약품까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잘 정리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보관 위치/사고 위치

철저하게 관리된 조선왕조실록

실록을 편찬할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도 저장장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업 작업을 정말 열심히 하였는데요.

고려 실록은 궁궐에 1부, 소실을 대비해 '해인사'에 1부 이렇게 총 2부를 만들어 관리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항상

4~5부를 만들어 보관하였습니다.

세종실록부터 실록이 완성되면 복사본의 오탈자를 막기 위해 활자로 4부를 인쇄해서 한양의 춘추관에 한부를

두고, 나머지 3부는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여 보관하였습니다.

지방의 세 곳은 충주, 전주, 성주입니다.

 

 

 

 

 

 

 

 

 

 

http://kid.chosun.com/ 안의와 손홍록 

실록을 지켜낸 안의와 손홍록

72년이 지나 중종 33년(1538년) 11월 6일

성주사고에 화재가 발생해, 태조실록부터 연산군일기 까지 불타 없어지는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나머지 사고에서 인쇄 및 필사를 해서 성주로 보내며 다시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54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주 사고본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주사고본의 경우도 전주의 유생인 안의와 손홍록이 사재를 털어 사고의 책들을 전부 내장산으로 옮겨 놓고, 이듬해 관청에

넘겨줄 때까지 번갈아서  관리하며 지켜내었습니다. 

이때 안의가 남긴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직상체일기] 입니다.

 

이렇게 유실된 실록은 광해군 때 춘추관과 함께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에 사고를 마련하고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다시 출판하여 실록 5부를 다시 완성하여 보관하였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춘추관 사고본은 모두 불타 없어지게 됩니다.

당시 청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묘향산 사고본은 적상산으로 마니산 사고본은 정족산으로 이전시켜 보관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이 우리 손에 전해지기까지

일제강점기에 각지의 사고를 철폐하면서, 적장 산본은 창경원 장서각으로,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총독부로 옮겨졌다가

경성제국 대학 도서관으로 다시 이관되었습니다.

실록을 처음 학술적으로 연구한 곳도 경성제국 대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대산 사고본은 일본이 도쿄 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반출했다가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대출 본 47권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소실시켜버렸죠.

정족산본은 경성제국대학에 남아있다가, 서울대학교 개교 이후 서울대학교의 규장각으로 이관되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있던 실록들은 임시수도 부산으로 수송되었는데, 서울대 도서관의 태백산사고본과

정족산사고본은 군용 트럭에 실려 부산으로 수송되어 경남 대한 부인회 창고 경상남도청 창고들에 보관되었습니다.

창경원의 적장 산본은 제때 피하지 못하고, 6.25 당시 서울을 점령했을 때 월북한 사학자 김석형에 의해 평양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적장산본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학국학 중앙연구원장 서각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최종적으로 현재 한국에는 사고 본 2종이 남아있습니다.

이 중 태백산본은 만일을 대비해 1985년부터 부산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관리하지 못하고 일부만 남은 오대산본은 2006년에 한국에 반환되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선왕조실록의 과학적인 보관방법과 우리 손에 오기까지의 다양한 여정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왕조실록에 숨겨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대하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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