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인물

거북선의 설계자는 따로 있었다? [나대용 장군]의 이야기

거북선 제작자 나대용과 거북선에 관한 이야기

 

이번에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을 보면서 거북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거북선의 제작자가 이순신 장군님이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거북선의 실제 제작은 나대용이라는 사람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한산/나대용 장군

영화에서 나대용님의 비중이 엄청 크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나대용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나대용 장군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 한장면

 

[거북선의 최초 기록]

사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거북선이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진 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건데요.

거북선의 최초의 기록은 1415년 태종 이방원이 귀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고 나오는 게 최초였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아마도 거북선은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가, 임진왜란 직전 나대용에 의해 다시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영화 한산/나대용 장군

[퇴사 후 자신의 꿈을 펼치다.]

나대용은 1556년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나, 1583년 병과에 급제하게 됩니다.

28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로 재직을 하였으나, 32살의 나이에 사직을 하게 됩니다.

빠르게 사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의 곧은 성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기록에서 그는 상관에게 아부를 잘 못하고, 직선적인 성격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영화 한산/거북선 설계도

지금으로 치면 퇴직을 하게 되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됩니다.

평소 선박에 관심이 많던 나대용은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선박 연구에 몰두를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선박에 관심이 많았냐면, "물밑으로 배가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직접 바닷물속으로 뛰어들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영화 한산/나대용 장군 장군

[거북선 테스트에 성공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거북선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물방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1590년 나주에서 거북선 실험 제작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때마침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사촌동생인 나치용과 함께 여수로 건너가 이순신 장군에게

거북선 제작을 건의하게 됩니다.

 

 

 

 

영화 한산/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이순신 장군과 만나다.]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의 설계도를 꼼꼼히 살핀 후, 실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서, 나대용을 전라좌수영 수군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 군관]으로 임영하 게 됩니다.

자신을 믿어준 이순신 장군을 위해, 나대용 장군은 1년여 동안,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과 함께 거북선을 완성하게 됩니다.

특히 거북선을 건조하는데 1년을 쏟아부었다고 하니, 엄청난 연구와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합니다.

 

 

 

 

 

 

 

 

 

 

영화 한산/거북선

[거북선의 완성과 임진왜란의 시작]

정말 극적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1592년 4월 12일 거북선은 전라좌수영 앞바다에서 발포 실험에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조선수군도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첫 싸움인 옥포해전에서는 거북선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었고, 1592년 5월 29일 경상도 사천에서의 전투에서 나대용의 연구결과는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사천해전에서의 승리 이후로 왜적들은 거북선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났고, 조선 수군은 바다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사천해전에서 공교롭게도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장군은 동시에 부상을 입었다고 하네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조선수군의 신화 창조]

이후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을 하며 전설을 써 내려갔죠.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자신의 사촌동생인 나치용 역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치열했던 전투는 끝이 나고, 일본군은 조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여러 전투에 참여했던 나대용은  많은 공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게 됩니다. 

 

 

 

 

 

 

 

 

영화 한산/나대용

[계속되는 도전과 죽음]

나대용 장군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06년 거북선보다 더 좋은 배를 구상했다며 의견을 내놓게 되는데요.

거북선보다 탑승인원은 줄이면서 활쏘기에는 더 수월한 창선을 건조하게 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1610년 남해 현감으로 있으면서 '해추선'이라는 쾌속정을 연구하고 개발하게 됩니다. 

그의 다양한 연구실적을 인정받아, 1611년 경기도의 수군을 관장하는 경기 수사(종 2품)의 관직을 받게 되었지만, 임진왜란에서 입은

전투의 후유증으로 인해 1612년 5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출처:https://live112.tistory.com/4649

[전설이 되다.]

훗날 나대용에 대한 권율의 평을 들어보면, 나대용과 이순신 장군의 만남은 신의 한 수라 불러도 될 정도였네요.

 

"이순신은 나대용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공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고

나대용 또한 충무공이 없었다면 공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거북선의 설계자인 나대용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참고로 미국 해군 연구소가 운영하는 군사 전문 매체에서는 거북선을 세계 해군 역사상 7대 명품 군함 중 하나로 손꼽았다고 하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듯해 뿌듯해지네요.

 

 

 

 

 

 

그리고 나대용님의 생가가 있다고 하는데, 해당 블로그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시간 되실 때 한번 보시면 좋겠네요.

 

 

[나주역사여행] 거북선을 설계하고 지휘한 나주 나대용 장군 생가와 소충사

나주역사여행 거북선을 설계하고 지휘한 나주 나대용 장군 생가와 소충사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나대용(羅...

blog.naver.com

마지막으로 나대용님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는 유튜브 영상이 있어서 남겨봅니다.

 

 

 

 

 

 

 

 

 

 


 

 

임진왜란 당시 바늘하나로 왜군을 물리친 병사 이야기

조선시대(임진왜란) 무명의 장수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돕기 위해 파견된 중국 명나라 장수인 [마귀]가 소사에서 왜군과 싸울 때의 일입니다. 조선군과 명군이 왜군과 대치를 하고 있었

minirecord.tistory.com

 

 

조선시대 남색 곤룡포의 비밀[feat.선조]

세자가 남색 곤룡포를 입게 된 이유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이번에 함께 이야기해볼 그림은 최근에 완성한 곤룡포를 입은 왕세자입니다. 그럼 그림을 먼저 감상해보실까요? 그림을 보면 우

minirecor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