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 병의 몸체에는 연못 주변의 갈대와 버드나무, 연못에 피어난 연꽃이 묘사되어 있고
원앙 한마리가 물결을 일으키며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백토 상감으로 새겨놨습니다.
(상감기법은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낸 뒤에 칼로 흙 표면에 문양을 새기고, 이 홈을 백토와 같은 색이 있는 흙으로 채우고
유약을 발라 도자기를 구워 만드는 방식의 세공 기술)
1962년 국보 제 66호로 지정, 간송 미술관에서 소장
일제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일제시대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은 개스비 컬렉션의 일부였습니다.
개스비 컬렉션이란 영국 귀족 출신의 변호사 존 개스비가 일제시대 도쿄에 거주하면서 수집한 고려청자 수집품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도쿄에서 골동품 수집을 시작했고, 처음에는 일본의 유물을 수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최상급 고려청자들을 사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쿄의 골동품 시장에 풀려있던 고려청자나 일본인 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고려청자들은, 전부 도굴로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들이었습니다.)된것들 이었습니다.)
그러던 1936년 일본 육군 장병들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 시도인 2.26 사건이 일어 낮자 개스비는 일본을 떠날 채비를 하게 됩니다.
이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소장품을 처분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고려청자 컬렉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를 보호한 영웅 전형필
개스비가 고려청자들을 다 처분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바로 개스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40만 원을 주고,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을 포함한 고려청자 20점을 다시 고국의 품으로 가져옵니다.
만약 전형필 님께서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국보로 지정된 이 청자를 보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다음에는 전형필 님에 대해서도 공부해서, 소개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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