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기린형 뚜껑향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높이 20cm, 지름 11.5cm의 향로로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룬 12세기 무렵에 만들어졌을거라 추정됩니다.
전체적으로 고려청자하면 생각나는 특유의 비색과 은은한 광택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향로에 향을 피웠을 때 몸체 위에 뚜껑을 덮으면 향의 연기가 뚜껑 위로 올라가, 기린의 입을 통해 빠져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는게 특징입니다.
(요즘의 향로와 사용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네요.)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는 약간의 손상이 있는것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좋고, 고려의 청자 제작수준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20일 국보 제 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청자 역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 영국인의 수집품이었던 [청자 기린형 뚜껑향로]
이전 저의 블로그에서 소개한적 있었던, 영국 귀족 출신의 변호가 존 개스비가, 일제시대 도쿄에 거주하면서 여러가지 청자들을 수집하였는데, 이것을 개스비 컬렉션이라 불렀습니다.
[기린형 뚜껑향로] 역시 ,이 귀족 출신의 변호사 개스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개스비의 손에 들어간 청자들은 일본인 수집가들이 도굴을 통해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기 때문에 , 우리나라의 귀한 청자들이 다른나라의 일반사람의 수집품이 된다는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미친듯이 수집을 하던 개스비에게도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요.
바로 1936년 일본육군 장병들이 일으킨 군부 쿠테타 시도인 2.26사건 때문인데요.
이것을 계기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으며, 곧 전쟁이 터질 것을 직감하고, 일본을 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소장품들을 처분하기로 마음먹고 내놓게 되었습니다.
[청자 기린형 뚜껑향로]를 보호한 영웅 전형필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전형필 선생입니다.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을 주목하고 있었기에, 개스비가 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40만원이라는 엄청난 거액을 주고 [청자 기린형 뚜껑향로] 포함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합니다.
만약 전형필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시 일본인들의 품에 뿔뿔히 흩어져, 그 소재조차 찾을수 없게 되었을것 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손에 들어와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다음에도 또다른 문화재 소개로 돌아오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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