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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염병 진단 키트 허준의 [신찬벽온방] 코로나 19로 떠들썩한 요즈음, 하루하루 걱정스러운 마음과 점점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마스크 때문에 갑갑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들에 비해 빠르게 정부와 의료업체의 협의하에 '진단키트'를 대량 생산하며 대규모 검사를 가능하게 했죠. 그 결과 마스크로 답답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한 정도로 안정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르게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정확하고 빠르게 대규모 검사가 가능한 진단키트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19 예방에 큰 공을 세운 전염병 진단키트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오늘은 조선시대 전염병 진단키트인 허준의 [신찬벽온방]에 관해 공부해 볼까 합니다. [신찬벽온방]의 탄생 배경 1612년 .. 더보기
남성도 가능했던 조선시대의 육아휴직[세종대왕의 복지] 안녕하세요. 미니 쭌입니다. [한국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육아휴직자는 2008년 29,145명에서 2017년 90,123명으로 동기간 약 3.1배 증가하며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중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8년 355명에 불과했으나, 2017년 12,043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는데, 이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및 '첫 3개월 급여 인상'등 소득 감소 보전조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늘어감에도 여전히, 남성이나 여성이 육아휴직을 내는데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정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육아휴직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그것도 여성만이 아닌 남성의 육아휴직도 보상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 더보기
일제시대 영국인 개스비 컬렉션이었던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청자 기린형 뚜껑향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높이 20cm, 지름 11.5cm의 향로로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룬 12세기 무렵에 만들어졌을거라 추정됩니다. 전체적으로 고려청자하면 생각나는 특유의 비색과 은은한 광택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향로에 향을 피웠을 때 몸체 위에 뚜껑을 덮으면 향의 연기가 뚜껑 위로 올라가, 기린의 입을 통해 빠져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는게 특징입니다. (요즘의 향로와 사용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네요.)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는 약간의 손상이 있는것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좋고, 고려의 청자 제작수준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20일 국보 제 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청자 역시 현재 간송.. 더보기
무려 185톤의 콘크리트로 덧칠된 아픔을 가진[익산 미륵사지 서석탑]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백제 무왕시대에 지어진 석탑으로,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 있습니다. 이 탑에도 역시, 일제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었는데요. 1913년 세키노 다다시와 다니이 세이치에 의해 탑의 실측조사가 진행된 후,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 최신 기술이며, 가장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인 시멘트 보수공사가 진행됩니다. 그 후에 이탑은 흉물스러운 문화재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었죠. 이 탑의 이름은 바로 [익산 미륵사지 서석탑]입니다. 오늘은 이 익산 미륵사지 서석탑에 관해 공부해볼까 합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역사 국보 제11호.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에 미륵 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사찰입니다. 석탑 역시 이때 함께 건립된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조선시대 금주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참수당한 윤구연과 영조 이야기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조선시대에 금주령이 자주 시행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으실 텐데요. 조선 왕조의 임금중 술을 가장 즐긴 사람은 바로 영조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조는 가장 강력하게 금주령을 내린 임금중 하나이기도 하였죠. 어떻게 보면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이런 금주령 때문에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관리가 있어 소개해볼까 합니다. 금주령 시행의 이유 농경이 기본인 조선사회에서 술을 빚는 것은 곡물을 많이 허비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흉년에 금주령을 많이 시행하곤 했는데요. 영조 9년(1733년) 1월에는 도성의 쌀값이 뛰면서 품귀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유를 찾아보니 집집마다 삼해주라는 술을 빚고 있었으며, 쌀을 파는 배들이 모두 술을 많이 .. 더보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서 살아남은 [훈민정음 해례본]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오늘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에 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훈민정음에는 [훈민정음 예의본]과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는데, 둘 다 중요한 문화재이지만 특히나, 한글 창제의 진실을 밝혀준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해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중요성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으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입니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의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글입니다. 1940년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은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 문자 기원설이 나올 정도로 온갖 기원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일제강점.. 더보기
한글 최초의 띄어쓰기는 외국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세종대왕님의 위대한 업적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 창제입니다. 그 훈민정음 창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세종대왕님이 혼자서 만들었는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에 관해 논란이 있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종대왕 단독 창제설이 맞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사실은 명나라에 사대를 하던 양반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일이기에 혼자서 한글을 만들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집현전 학사들과 2년 9개월 동안 검증을 하고 1446년 9월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해설집을 발행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 해례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적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가.. 더보기
만약 [소현세자]가 살아있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안녕하세요. 미니쭌입니다. 최근에 방영을 시작한 [더킹 영원의 군주]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요. 이 드라마의 특이한 점은 평행우주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겁니다. 평행우주란? 어떤 우주에서 분기하여 그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를 의미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 상에 위치한 다른 세계이다. 다중 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가 있다는 이론이지만 평행우주는 동일한 차원의 우주만을 의미한다. -위키백과- 극 중 주인공 이곤(이민호)은 대한제국이라는 곳에서 황제로 살고 있습니다. 또다른 주인공인 정태일(김고은)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죠. 이곤이 우연히 차원의 문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후, 도서관에서 어떻게 두 세계에 차이가 생기게 된 건지 분석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