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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일상

조선시대 부정부패의 상징 귤

저는 겨울이 되면 보일러를 따뜻하게 틀어놓고, 책을 읽으며 귤 까먹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요즈음 구하기도 쉽고, 맛도 좋은 귤이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에서만 재배되는 

굉장히 귀한 왕의 진상품 중 하나였다면 믿어지시나요?

오늘은 이 귀하디 귀했던 조선시대  귤에 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봐주세요. 

 

 

 

화첩 ‘탐라순력도’ 내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인 ‘감귤봉진’. 제주 망경루 앞뜰에서 임금에게 진상할 감귤을 포장하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다. [국립제주박물관]

 

귤의 역사 

귤은 온대 과일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제주도에서 재배되어 왔습니다. 

귤을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보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특히나

귀한 진상품으로 여겨지며, 지체 높은 양반들조차 쉽게 먹지 못했던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귤이 진상품으로 바쳐지면 나라가 들썩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조선시대 귤은 제주도지방에서만 재배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귀한 과일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주에서 귤이 진상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이 열렸고

상품으로 귤을 나눠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귤이 귀하고 맛있게 여겨졌는지는 문종이 집현적 학자들에게 내린 친필 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향나무의 향기는 코에만 향기롭고, 기름진 고기는 입에만 달구나

가장 사랑스러운 동정의 귤은 코에도 향기롭고 입에도 달구나."

-문종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고기보다도 귤이라니, 고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당시 얼마나 귤의 값어치가 높고

사랑받고 있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선시대 감귤농사

감귤 때문에 파직당한 사람들

이런 귀한 귤이었기에 여러 가지 폐단과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숙종 26년 10월 1일

유학, 이명신이 올린 상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린 감귤은 군주의 물건이요. 움켜쥐고 빼앗은 것은 패역한 행동이니, 방자스럽게

패역한 행동을 하는 것은 군주의 물건을 없신 여기는 것이므로 진실로 죄가 있습니다."

 

문종 즉위년 12월 29일

감귤을 도둑질한 환자 윤득부와 이용련의 고신을 거두다.

(고신은 품계와 관직을 임명할 때 주는 임명장인데, 감귤 하나 때문에 이 고신을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성종 1년 7월 6일

의금부에서 김정광 등이 뇌물을 받은 실정을 아뢰고 그들을 참할 것을 청하다.

홍말 생이라는 자가 김정광에게 다양한 뇌물을 바쳤는데, 그 품목 중에 감귤도 들어가 있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감귤농사

제주도 주민에게는 악몽 같았던 귤

오늘날 이런 귀한 귤 농사를 지으면 대박 나서 부자가 될 수 있었겠지만

조선시대에 귤농사는 제주도민에게는 악몽과도 같았고, 기피대상 1호였습니다.

왜? 제주도민에게 귤농사가 기피대상 1호였을까요?

 

여러 가지 폐단이 있었지만 가장 컸던 이유는 귤은 많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항상 같은 양의 감귤을

상납하도록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감귤농사가 잘되었다 하더라도 흉년이 들었을 때 문책받을 상황을

대비해 살아있는 감귤나무를 잘라버리거나, 뿌리에 끓는 물을 부어 나무를 고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관리 사령이 이첩을 가지고 와서

그 과실의 알 수를 세고 나무에 봉인을 하고 갑니다.

귤이 잘 익게 되면 와서 따는데, 어쩌다 두어 개쯤 바람에 떨어진 것이 있으면

즉시 추궁하여 보충시킵니다.

만약 보충할 수 없으면 그 원가를 징수합니다."

-정약용 목민심서-

 

이처럼 1년 내내 고생해서 농사지은 귤을 그냥 가져가면서도 보상을 따로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또한 관리 사령이 왔을 때 닭을 삶고 돼지를 잡아 대접하기에 그 비용이 추가로 들게 되었는데,

이에 피해를 본 이웃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귤나무를 가진 집을 원망하며  그 집에 비용을 물립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귤나무가 열린 집안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를 비벼 넣어. 나무를 저절로

말라죽게 하는데, 이는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관리대상에서 삭제되기 때문입니다.

싹이 옆에서 나오면 끊어 버리고, 종자가 떨어져서 싹이 나면 나는 대로 밟아버리는 이유입니다.

 

 

 

 

 

조선시대 감귤농사

정부에서 내려온 귤의 생산부터 포장까지의 가이드

귤 재배에서부터 진상까지의 폐단을 알고 있었던, 조정에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제주에 안무사를 파견하였는데, 이때 공납의 민폐를 줄이라는 유시를 내리게 됩니다.

(유시란 관청 등에서 백성을 타일러 가르치는 것 또는 문서를 이야기합니다.)

 

유시에는 귤의 품종에서부터 재배, 관리, 보관, 진상, 포장법까지 자세히 적혀있어 귤과 관련한 중요한 사료로

남아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 중 하나는 최상품인 금귤은 법련이라는 스님 집에 딱 한그루가 남게 되었는데, 멸종을 우려해서 보전

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귤이 다치지 않게 그릇 하나에 귤 한 알씩 넣어서 포장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권장사항이

적혀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릇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귤이 얼마나 귀했으면 귤이 상처 입치 않도록 귤을 하나씩 넣어서 포장

했으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이처럼 귀하디 귀한 귤을 오늘날에는 참 손쉽게 먹을 수 있다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어야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선시대 아무나 맛볼 수 없었던 귀한 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좀 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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