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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일상

조선시대에도 배달음식이 있었다고?[효종갱과 냉면에 관한 이야기]

[조선시대 배달음식 효종갱과 냉면]

요즈음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주 배달음식을 시켜먹다보니, "조선시대에도 혹시 배달음식이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해봤는데 조선시대에도 배달음식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저는 조선시대에 배달음식이 진짜 있다고? 라며 깜짝 놀랐거든요.

 

오늘은 이 놀라운 조선시대 배달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배달

 

기록으로 전해지는 최초의 배달음식 냉면

배달음식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냉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먹었다."

-1768년 7월-

 

 

또 다른 기록은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있는데

 

"한가로운 밤이면 매번 군직과 선전관들을 불러 함께 달을 감상하곤 하셨다.

어느 날 밤 군직에게 명하여, 문틈으로 면을 사 오게 하며 이르기를

"너희와 함께 냉면을 먹고 싶다." 고 하였다.

-순조 초년(1800)-

 

이렇듯 조선시대에도 배달음식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알수 있듯 순조는 냉면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런 순조와 냉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해 드려 볼까 합니다.

 

 

 

 

조선시대 배달음식 냉면 

 

순조와 냉면 이야기

늘 그러했듯 순조는 당직근무를 서는 병사들과 함께 냉면을 먹으려고 배달을 시키게 됩니다.

이때 군관 하나가 혼자 돼지고기를 사 온 것이 순조의 눈에 띄게 되는데요.

이에 순조는 왜? 돼지고기를 사 왔는지 물어봅니다.

군관이 말하기를 "냉면에 넣어 먹을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이에 순조는 "저자는 혼자 먹을 것이 따로 있으니 냉면을 줄 필요가 없다."라며

냉면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당시 순조의 나이는 11살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만 고기를 먹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던 것 이겠죠?

덕분에 열심히 배달해온 군관은 냉면을 먹지 못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국밥

 

배달 음식 중 최고 인기 메뉴는 역시 효종갱

술 마신 다음날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면, 전날의 숙취가 말끔히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조선시대에도 술 취한 다음날은 따뜻한 국물로 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배달되어온 [효종갱]이라는 음식을 통해서 말이죠.

 

조선시대 신분이 높은 관리들은 주막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또한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해야 했기에 주막에 갈 시간도 없었죠. 

그럼에도 숙취해소를 위해서 해장은 해야겠죠?

이런 니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밥 배달 서비스입니다.

이때 배달이 가능했던 음식이 바로 효종갱이었습니다.

 

 

효종갱의 뜻을 풀어보면 [새벽, 쇠북, 국] 말 그대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입니다.

효종갱은 꽤나 비싼 음식일 거라 생각이 드는 게, 재료만 봐도 전복, 해삼,소갈비에 송이까지 넣고

끓인 몸에 좋은 보양음식이었습니다. 

효종갱은 지금도 남한산성 근처에서 팔고 있는데, 시간 되시면 한번 드셔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때도 남한산성에서 한양까지 배달을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식지 않고 배달이 가능했을까요?

 

 

 

 

 

 

조선시대 배달음식 효종갱

 

 

식지않고 배달되는 효종갱의 비밀

배달음식은 식지않고 배달 전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배달되어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선시대 배달음식이었던, 효종갱은 광주 남한산성에서 밤사이에 푹 끓인후, 배달하기 시작하여

새벽종이 울릴 때쯤 배달을 완료하여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5~6시간 정도를 사람이 걸어서 배달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광주성 안에서는 효종갱을 잘 끓인다.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재상 집에 이른다."

-해동 죽지-

 

 

해동 죽지에 적혀있는 것을 자세히 보면 식지 않고 배달되는 효종갱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바로 아셨을 수도 있는데, 식지 않고 배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솜 덕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6시간 정도를 걸어서 배달해야 하는데, 그때 당시 보온통이 있었을 리가 없었죠.

이때 보온통의 역할을 해줬던 것이 바로 솜이었습니다.

항아리 겉을 솜으로 감싸서 온도를 최대한 유지하면 배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죠.

온도가 유지된다고 한들, 저 무거운 항아리를 들지 못하면 말짱 꽝인데, 저 항아리를 매고 걸어서

배달했던 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고생 고생해서 배달된 음식은, 밤새도록 술판을 벌렸던 관리들의 손에 들어가 그들의

해장을 책임진 것이었죠.

 

 

효종갱 배달법

 

 

 

 

효종갱 이후 배달음식의 변천사

1906년 7월 14일 일간신문인 [만세보]에는 첫 배달음식 광고가 등장합니다.

이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전해지는데요.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 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 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최초의 광고를 낸 음식점은 바로 명월관이었습니다.

 

명월관은 최초의 조선시대 궁중요리를 전문으로 한, 요리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명월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공부해서 가져와 보겠습니다. 

명월관은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출장뷔페 사업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배달원의 일상이 신문에 소개될 만큼, 배달문화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특히나 설렁탕의 인기가 엄청났던 시기입니다.

경성의 설렁탕집은 100여 개를 넘어섰고, 배달해주는 사람들도 이런 니즈에 따라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달원이 늘게 된 이면에는 체면 때문에 설렁탕집에 드나들기를 꺼려하던 양반들이나

당시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마치며..

효종갱과 배달음식에 관해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잘 만들어진 영상을 가져와 봤습니다.

시간 되실 때 영상을 보시면 좀 더 깊이 있게 배달음식에 관해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outu.be/xEo0zfdf1l4

역사채널e/조선시대 배달음식 

 

 

이번 시간에는 조선시대 배달음식이었던 냉면과 효종갱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저는 최근 마켓 컬리에 빠져서 새벽 배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참 편한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그 이면에서 고생하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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