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일상

조선시대 국민스포츠 하키와 골프[장치기와 타구]

조선시대 다양한 놀이문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축구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외국 유명 리그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국민 스포츠라 불렸던 운동이 있었는데, 하키 그리고 골프와 비슷했다고 해요.

이번 시간에는 이 조선시대 국민스포츠 였던 장치기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조선시대 국민스포츠 

장치기는 놀이 방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됩니다.

1. 막대기로 구멍에 공을 쳐 넣는 방식. [타구]
2. 말을 타고 공을 쳐 구문에 공을 넣는 방식. [격구]
3. 말을 이용하지 않고 땅 위에서 공을 쳐 구문에 넣는 방식. [장치기]

이렇게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장치기는 각각 타구, 격구, 장치기로 분류되어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장치기는 주로 겨울철에서 봄 사이 농한기에 청소년을 비롯한 남성들의 경기로 많이 행해졌습니다.

장소는 주로 논바닥이나 광장, 공터였는데, 원래는 축국과 함께 일정한 대형을 이루고 공격과 수비를 연습하는

진법훈련과도 관련이 있었던 놀이로 생각되어집니다.

 

 

 

 

 

 

 

 

 

 

해를품은달/ 타구치는 모습

 

오늘날의 골프와 비슷한 타구

조선시대 왕자부터 서민, 하인에이르기까지 재미있게 즐겼던 놀이 중 하나가 바로 타구입니다.

길 위 여기저기 구멍을 파놓고 긴 막대기로 둥글고 작은 공을 쳐서 그 구멍에 들어가게 하는 놀이였는데

오늘날의 골프와 유사한 점이 많죠.

타구 놀이를 할 때 재미있었던 점은, 각자의 공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 혹은 재미있는 별칭 같은

것을 공에다 붙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구멍의 경우 공이 잘 들어가기 힘든 곳에 파두었는데, 재미를 위해 빗나가면 떨어지는 다리 끝과 같은 곳에 파놓기

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타구와 관련해서 실록에 나와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1413년 [태종실록]

"혜정교 거리에 아동 곽금, 막금, 막승, 덕중들이 있어 타구 놀이를 하는데, 매구의 칭호를 하나는 주상이라 하고

하나는 효령군이라 하고, 하나는 충녕군이라 하고, 하나는 반인이라 했다.

서로 치다가 구 하나가 다리 밑의 물로 굴러 들어가자, 그 아이가 대답하기를 "효령군이 물에 빠졌다."라고 했다.

 

 

세종대왕님도 왕자일 때 하인들과 어울려 장치기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날씨가 추워 궁궐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겨울부터 연초까지 이 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은 왕이 주최하는 타구가 궁궐 뜰에서 자주 거행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하키 장치기

장치기 놀이에도 공과 막대를 쓰는데, 공은 야구공 만하게 나무를 둥글게 깎아 만들어 가죽을 입히기도 하였습니다.

막대는 뽕나무, 혹은 잘 부러지지 않는 나무로 만드는데, 크기와 모양이 오늘날의 하키 채와 골프채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합니다.

인원 체한 은 없었으나, 보통 11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공은 한 개만 사용합니다.

각 팀마다 1명은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고 나머지는 공격과 수비를 맡게 됩니다.

경기장 중앙선 한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려, 공을 놓을 구멍을 파 두고, 그 구멍에서 1보와 7보 반경으로 원을 그립니다.

 

중앙선에서 좌우 각가50보 정도의 거리에 골대를 만들고, 사방에는 선을 그어 공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합니다.

경기를 시작할 때는 각 팀의 주장이 1명씩 나와 중앙선의 구멍 앞에서 공을 허공에 던져 놓고 쳐서 공이 멀리 간 편이 

먼저 공격을 시작합니다.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면 한점을 얻게 되며, 다음부터는 골을 먹은 팀이 첫 공을 쳐 게임이 시작됩니다. 

정해진 시간은 따로 없으며, 점수 내기로 승부를 정해놓고 시작합니다. 

 

 

 

 

 

 

 

 

장치기의 반칙과 벌칙

장치기도 오늘날의 스포츠처럼 반칙이 존재했습니다.

반칙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공이 몸의 일부에 닿는 것.

2. 상대편의 막대를 몸으로 막는 행위.

3. 상대편의 몸을 막대로 치거나 치려고 하는 행위

4. 상대편의 활동을 몸으로 막는 행위

 

그리고 이런 반칙에는 벌칙이 따라오는데 1~4번의 경우 심판은 상대편에게 '몰래 공'을 치게 합니다.

물래 공이란 몸을 한 바퀴 돌면서 골을 치는 것입니다. 

심판은 딱따기를 쳐서 경적을 울리고, 상대편을 식별하기 위해, 너비가 있는 청홍의 색띠를 두릅니다. 

 

 

 

 

이런 장치기와 타구는 격구가 조선 세종때 무과시험에 채택되면서 이를 연마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성행했다가

18세가 중반 격구가 무과의 과목에서 빠지게 되면서, 민간에서 이 장치기대회만 남아 명맥으로 유지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우리 경기부흥의 봉화, 장구 얼레공대회 개최'라는 제목 아래 장치기 대회가 개최 되면서

장치기의 명맥이 부활되는 계기를 맞았습니다.

그 후 각 지방에서 간헐적으로 행해지다가, 1970년 [경남 밀양문화원 무안분원]이 발족할 당시 촌로들의 회상을 종합하여

장치기대회가 열렸으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장치기가 오늘날까지 전승,보존되고 있습니다.

 

 

 

 

 

뭔가 장치기를 공부해보니, 오늘날의 축구와도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 보이는데요.

조선시대 스포츠 경기처럼 각 팀별로 토너먼트를 열어 상품을 받는 그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조선시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에는 실제 장치기를 재현한 모습이 있어 첨부해봤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한번 보시면 좀 더 이해가 쉽게 되실 것 같네요. 

 

 

 

 


 

 

조선시대 기초화장 부터 색조까지 [조선 데일리 메이크업]

안녕하세요. 미니쭌입니다. 요즈음 유튜브를 보다 보면, 참 다양한 종류의 화장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비포 에프터를 보여주며, 정말 다른 사람처럼 자신을 바꾸는 분들을 보면 신기할

minirecord.tistory.com

 

 

조선시대에도 당구장이 있었다?[옥돌실과 순종]

조선시대 당구장 옥돌실과 순종 조선시대에도 당구장이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이번 시간에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당구장 옥돌에 대해 공부해 봤습니다. 당구의 기원과 전파 당구의 기원은 여

minirecord.tistory.com

 

 

조선시대 소박맞은 여인의 삶 [습첩]

안녕하세요. 미니쭌 입니다. 조선시대에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았던 여인들은 이혼을 당하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이혼한 여인을 수치스럽게 보는 풍속 때문에,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

minirecor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