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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선시대 일상수집/조선시대 일상

조선시대 권력의 힘으로 조작된 살인 사건[임해군의 유희서 살해사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하며 무차별 폭행은 물론이고, 수치심을 주는 발언까지 하며

결국에는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 이런 사건들이 종종  TV 뉴스에 보도되곤 했었죠.

그런데 이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범행과 그것을 은폐하려고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이 오늘날만 벌어진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있었던, 권력의 힘으로 조작된 살인사건 중 하나인[유희서 살해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드라마 옥중화

살해당한 유희서와 용의자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

 

선조36년(1603년) 8월 22일 경기도 관찰사 강신이 급하게 장계를 올립니다.

징계의 내용은 고위관료인 '유희서'가 화적떼에게 살해당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유희서는 도승지를 고쳐 개성 유수를 지낸 고위관료였으며, 당시 영의정인 이덕형의 외사촌으로 장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더욱 이상한것은 살인을 저지른 도적때가 귀중품은 훔쳐가지 않고 말과 옷만 훔쳐 달아났다고 하니,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들수밖에 없었죠.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형조가 중심이 되어 유희서를 살해한 화적떼 색출에 나서게 됩니다.

이후 한달만에 화적떼에 가담한 '설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을 잡았습니다.

설수를 체포하면서 그 일에 함께 가담한걸로 보이는 김덕윤과 황복이라는 자도 채포하여 옥에 가둬두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설수'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였는데요.

거기에 더해, '김덕윤'도 국문을 앞두고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황복'이라는 자도 역시나 전옥서에 갇혀 있던 중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배후가 있는것은 아닌지 의문이 커져갔고 유희서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을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왜 죽었는지 밝혀낼 방도는 없었고,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드라마 해치/임해군

 

 

 

 

 

 

 

새로운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 임해군

어느덧 해를 넘겨 1604년이 되었습니다.

이때 진범에 관해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유희서의 죽음에 임해군(이진)이 관련되어 있을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임해군은 선조의 장자이며 광해군의 친형으로 광해군 즉위후 유배지인 교동에서 사망한 인물 입니다.

이런 소문이 돌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유희서를 살해한 화적떼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김덕윤이 임해군이 부리는 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사건을 담당하던 변양걸은 유희서를 죽인 진범이 유희서의 첩 애생과 임해군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됩니다.

그가 생각한 사건을 발단은 이렇습니다.

임해군이 애생을 좋아하여, 유희서로부터 빼앗고자 했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자 애생과 공모하여 유희서 살해를 교사한것 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추론을 확인시켜줄 살인에 가담한 박삼석이란 인물을 고생끝에 체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박삼석의 진술은 계속 바뀌게 되고, 뜬금없는 유희서의 아들인 유일에게 강압을 받아 진술을 번복했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합니다.

얼마후 박삼석 또한 모진 고문으로 죽게 되면서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변양걸이 자신을 타겟으로 삼고 사건을 조사하는 것을 알게된 임해군은 선조를 찾아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습니다.

이 결과로 유희서의 아들인 유일의 흉계에 의한 것으로 사건이 결론 났으며, 유일은 장 1백대를 맞고 3천리 밖으로 유배를,

사건을 파해치던 변양걸은 장90대를 맞고 징역2년 6개월 형에 처하게 됩니다.

 

 

 

 

 

 

 

 

드라마 옥중화

 

 

 

너무 늦은 재수사, 결국은 찝찝하게 남게된 살인 사건

선조가 집권하고 있을때는 선조의 압박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했지만, 광해군때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 된적이 있었습니다.

광해군 즉위년 8월6일 사헌부에서 이렇게 고하였습니다.

 

"의주의 여종 출신 애생은 유희서가 여러해 동안 거느리고 있던 첩으로,

몰래 역적 이진(임해군)과 통정을 하고는 적당을 불러다 희서를 살해하여, 그 행위가 매우 흉악한데도

지금까지 처형을 모면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시금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인 만큼, 의금부로 하여금 국문하여 형벌을 시행하도록 하소서."

 

 

애생은 이번에도 의금부에 넘겨져 신문을 받았으나, 사건이 오래되기도 하였고, 명확한 증거나 증인을 찾을 길이 없었기에 끝내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고 석방되면 사건은 종결되게 됩니다.

결국 유희서 살해사건은 죄없는 그의 아들과 사건의 진범을 찾으려던 관리만 희생된 조선판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게 된데는, 자신의 아들을 감싸려는 선조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한걸로 볼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관의 기록을 끝으로 이 시간을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살피건대 임해군 진은 교만하고 음란한 짓을 멋대로 하여 불의한 일을 많이 저질럿다.

유희서는 재신인데도 도적을 시켜 살해했고,

하원부인은 정경부인인데도 모욕을 가했으니, 왕법이 시행되었다면 당연히 형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총명을 잃고 오히려 개인의 사랑에 빠져 그의 악을 모르고 죄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문과 신문의 형벌이 도리어 도적을 잡는 책임을 맡은 중신에게 미치게 했다.

그리하여 임해군 진으로 하여금 횡포를 부려도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고 악을 행해도 징계받는 일이 없게 만들었으니

이는 실로 성조의 실덕이다."

 

 

 

 

참고서적:크리미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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